요즘 남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과일을 꼽으라면 단연 아보카도인 것 같습니다. 길에서 아보카도를 파는 사람들도 부쩍 늘어났고요.
건강 과일로 알려지면서 아보카도의 인기가 치솟고 있는 것인데요.
아이러니컬하게도 아보카도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농민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남미의 아보카도 생산국 칠레의 이야기입니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220km 정도 떨어진 중부지방 페토르카는 물 부족으로 농민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곳입니다.
지난 여름에만 소와 양 등 가축 5만 마리가 물 부족으로 폐사했다고 하니 그 심각성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건 농사나 축산에 종사하는 농가뿐 아닙니다. 양봉도 씨가 마르고 있습니다.
페토르카에서 평생 양봉을 했다는 70대 할머니 마르타 푸엔테는 한때 100개 넘는 양봉통을 돌보던 벌꿀 부자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양봉을 접고 소액의 연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고령이 되어 양봉을 접은 게 아니라 물이 부족해 망했다는 게 할머니의 설명인데요.
할머니는 "우리 마을에 양봉을 하던 농가가 15가구나 됐는데 지금은 물 부족으로 모두 양봉을 접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황폐한 할머니의 농촌과 비교되는 곳이 있습니다.
할머니의 마을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의 산은 싱싱한 녹색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여기저기 벌목을 하고 들어선 아보카도 농장들 덕분입니다.
물 부족으로 망한 농민들은 "아보카도 때문에 우리가 망한다"고 하소연하고 있는데요. 이건 무슨 말일까요?
칠레는 지금 심각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50년 내 최악의 가뭄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는데요. 물이 부족해진 건 분명 가뭄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보카도가 원망을 사는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요?
아보카도는 열매가 익어 수확을 할 때까지 쉬지 않고 물을 뿌려주어야 하는 과일입니다. 아보카도 1kg를 생산하기 위해선 물 400리터를 뿌려주어야 한다고 하니 그야말로 <물먹는 하마> 같은 과일인 셈이죠.
아하~ 이제 이해가 가시죠?
가뜩이나 물이 부족한 데 아보카도 농장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면서 일반 농가의 물 사정은 더욱 악화된 것입니다.
게다가 아보카도 농장은 대개 기업형인데 엄청난 자본을 투자해 물길을 농장으로 돌려놓고 있다고 하니 영세 농가로선 속수무책인 겁니다.
칠레에서 아보카도는 <녹색 금>이라고 불립니다. 그만큼 돈벌이가 돼 생산이 매력적이라는 뜻이죠.
칠레에서 아보카도 생산이 본격화한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였는데요. 농업기업들이 헐값에 산을 사들인 후 나무를 베어버리고 아보카도 농장을 조성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보카도 생산이 늘면서 칠레는 남미의 대표적인 아보카도 생산국가로 발돋움하게 됐죠. 전체 생산량의 70%를 유럽 등으로 수출할 만큼 외화벌이 효과도 커졌고요.
하지만 이에 비례해 영세 농민의 시름은 깊어졌습니다. 망하는 농민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죠. 일반 주민들도 고통을 받게 됐고요.
칠레 중부 지방에서 물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고 있는 농민과 주민은 자그마치 4만 명에 달하고 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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