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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 부통령, 국가에 무보수 봉사 선언한 이유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부통령이 무보수 국가 봉사를 선언했습니다. 

 

물론 이런 결정을 내린 데는 나름 속사정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월급을 받지 않겠다는 선언이 꽤나 신선합니다. 

 

페르난데스 부통령은 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일까요? 

 

페르난데스 부통령이 월급을 받지 않겠다고 결심한 건 이미 지난 3월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런 자신의 결심을 행정부에 알렸고, 아르헨티나 행정부는 이 같은 사실을 최근에야 관보를 통해 공개했습니다. 페르난데스 부통령은 5월부터 임기가 끝날 때까지 한 푼의 월급도 받지 않기로 했다고 해요. 

 

아르헨티나 정부통령의 임기는 4년입니다. 

 

2019년 대선에서 승리한 대통령과 함께 페르난데스 부통령이 취임한 게 2019년 12월 10일이니까 그의 임기는 2023년 12월 10일까지입니다. 

 

아직 임기가 절반 넘게 남아 있는데 앞으로 월급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 정도면 그래도 어느 정도 진심이 담긴 결정이라고 봐도 되겠죠? 

 

페르난데스 부통령이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경력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페르난데스 부통령은 정말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입니다. 영부인과 대통령을 거쳐 부통령이 된 인물이거든요. 아마도 이런 경력을 가진 정치인은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 시작은 2003년이었습니다. 아르헨티나 남부 산타크루스의 주지사였던 남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사진 위)가 덜컥 대통령에 당선된 것입니다. 

 

사실 대선 초반까지만 해도 네스토르 키르치네르의 지지율은 5위에 불과했으니까 이변이라면 이변일 수 있었죠. 아무튼 덕분에 페르난데스는 2003~2007년까지 영부인이 됩니다. 

 

<페르난데스의 취임식 장면. 옆의 남자가 물러나는  전직 대통령인 남편입니다. >

남편은 2007년 12월 10일에 대통령에서 물러났는데요. 

 

이때 기이한(?)일이 벌어집니다. 권력을 승계한 차기 대통령이 바로 자신의 아내, 그러니까 그때까지 영부인이었던 페르난데스였던 것입니다. 

 

불법으로 권력을 물려준 건 아니었구요, 여당의 대통령후보로 나선 영부인 페르난데스가 대선에서 승리한 덕분이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페르난데스의 취임식 장면. 옆의 남자가 물러나는 전직 대통령인 남편입니다.>

이렇게 대통령이 된 페르난데스는 1차 임기를 마치고 연임에 성공하면서 2007~2015년까지 장장 8년간 대통령으로 재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에겐 큰 슬픔을 겪기도 했어요. 

 

든든한 후원자이자 전직 대통령인 남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가 2010년 급성 심장마비로 사망했거든요.

 

아무튼 2015년 대통령에서 물러난 페르난데스는 고향인 아르헨티나 리오 가예고스로 내려갔는데요. 

 

이후 나름(?) 조용하게 보내다가 2019년 화려하게 정치일선에 복귀합니다. 

 

야당인 페론당이 2019년 대선에 나갈 정부통령 후보를 결정하는데 부통령 후보로 나서겠다고 선언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선거에 이겨 부통령이 되었죠. 전직 영부인이자 전직 대통령인 페르난데스는 2019년 12월 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독특한 그의 경력은 이렇게 완성이 됐죠. 

 

그런데 워낙 경력이 독특하다 보니 그는 구설수에 오른 적도 많은데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그가 받는 대통령연금이었습니다. 

 

<페르난데스는 얿마 전 이렇게 코로나19 백신을 맞기도 했습니다.>

전직 대통령에겐 연금이 나오잖아요. 퇴임한 페르난데스에게도 당연히 연금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페르난데스는 이미 연금을 받고 있었습니다. 2010년 전직 대통령이었던 남편이 사망하자 배우자로서 그의 연금을 승계해 수령한 것이었죠. 이건 합법적인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퇴임하자 그에게 지급되는 대통령연금이 2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남편 연금, 자신의 연금 이렇게 말이죠. 

 

<부통령으로 취임하는 페르난데스입니다.>

사실 이건 모두 적법한 건데 사회 일각에선 "페르난데스가 이중으로 연금을 받는다" 이런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죠. 

 

그러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당시 아르헨티나 정부는 페르난데스에게 연금지급 중단을 통고합니다. 

 

2015년 페르난데스가 물러나면서 정권을 잡은 건 프로당이라는 우파 정당이었어요. 페론당하고는 숙적 관계죠. 당연히 정치보복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사진 오른쪽이 그의 숙적이 된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입니다. 인사하는 표정이 모든 걸 대변하죠?>

8년이나 대통령으로 재임했지만 자신의 연금을 받지 못하게 된 페르난데스는 그간 남편의 연금만 받아왔는데요. 

 

2019년 대선에서 페론당이 승리해 정권을 되찾으면서 상황은 반전합니다. 

 

페론당 정부는 최근 페르난데스의 연금 문제에 대해 "남편의 연금만 받도록 한 건 정당한 권리를 침해한 부당한 결정이었다"면서 이를 바로잡기로 했습니다. 

 

<페르난데스는 이렇게 장난끼 많은 정치인이기도 합니다 ㅎㅎ>

페르난데스로선 이제 자신의 대통령연금과 남편의 대통령연금을 동시에 받을 수 있게 된 것이죠. 

 

페르난데스가 부통령 월급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적법한 것이라고 하지만 2명분 전직 대통령연금을 받는데 월급까지 받는 건 국가에 너무 미안하다는 것이죠. 어떤가요, 이 정도면 그래도 꽤나 신선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