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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세상/▶ 중남미 이슈

멕시코 여성들의 이유 있는 분노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에 가면 소칼로라는 곳이 있습니다. 

 

권력기관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어 멕시코 권력의 중심부라고 할 수도 있지만 국민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광화문처럼 각종 집회가 열리곤 하죠.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멕시코시티 소칼로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렸습니다. 

 

위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정말 엄청난 인파가 몰렸죠. 

 

집회에 참가한 여성들은 "여자들에게도 안전한 국가를 만들자"고 힘차게 외쳤습니다. 이런 집회는 멕시코시티뿐 아니라 과달라하라, 베라크루스, 몬테레이 등 멕시코 각지에서 열렸습니다. 

 

여성의 날인데 수많은 멕시코 여성들은 왜 이렇게 분노에 가뜩 차 한 목소리를 낸 것일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여성을 노린 범죄, 여성이 피해자인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탓입니다. 

 

멕시코의 비정부기구(NGO) <페미사이드 시민관측대>에 따르면 2021년 멕시코에선 여성 3750명이 살해됐습니다. 하루 평균 10명꼴로 여성들이 목숨을 잃은 셈이죠.

 

2021년에서 2022년으로 해가 바뀌었지만 달라진 건 없습니다. 올해 1월 멕시코에선 여성 292명이 살해됐거든요. 여전히 하루 10명꼴이죠. 

 

여성이 살해되는 살인사건을 페미사이드라고 하죠. 

 

하지만 멕시코 당국은 여성살해사건을 페미사이드로 분류하는 것조차 소극적입니다. 올해 1월 발생한 여성 292명 살인사건 중 페미사이드로 수사를 진행한 사건은 75건에 불과했어요. 

 

멕시코 여성들이 "이게 나라냐?"고 목청을 높이기에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죠. 

 

통계상 지난해 피살된 여자는 3750명, 올해 1월 292명이었지만 실제 피해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수 있습니다. 

 

생사를 알 수 없는 여성 실종자들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입니다. 

 

2021년 멕시코 19개 주에서 실종돼 생사를 알 수 없는 여성은 1만32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 있는 거죠. 

 

뿐만 아닙니다. 성범죄도 여성들이 안심하고 살 수 없게 하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2021년 멕시코 전역에서 여성이 피해자로 신고된 성범죄는 모두 6만9514건이었다고 합니다. 강간, 성추행, 성희롱 등이 하루 평균 190건 이상 발생했다는 얘기죠.

 

여성들도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국가를 만들자는 여성들의 절규는 정말 간절한 것입니다.  

 

하지만 연방정부를 비롯한 당국은 이런 여성들의 가슴에 못을 받고 있습니다. 

 

8일 대규모 집회가 예고되자 멕시코 당국은 "폭력행위가 있을 것이란 첩보를 입수했다"면서 주요 기관과 건물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삼엄한 경비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여성들은 "마약카르텔이 설쳐도 그런 짓은 안 하더니 우리가 마약카르텔보다 위험하다는 말이냐"고 발끈하고 나섰죠. 

 

여성단체들은 집회를 하루 앞두고 멕시코시티에 체벨린 비행선을 띄웠습니다. 

 

"땅에서 우리를 막겠다고? 그럼 우리는 하늘을 장악하겠다" 이렇게 다짐하며 여성단체들이 체벨린 비행선을 띄워 공중에서 항의비행 시위를 한 것입니다. 

 

멕시코시티 상공을 누빈 체벨린 비행선에는 "(살해되거나 실종된) 여성 단 1사람도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8일 집회에 당국은 질서유지를 이유로 경찰을 투입했는데요. 

 

작전에 동원된 여경들이 집회에 합류하는 초유(?)의 사태도 발생했습니다. 여경들은 "경찰 제복을 입었든 민간복을 입었든 우리는 모두 멕시코의 여자들이다"라면서 집회에 가담했습니다. 

 

여경들이 집회 참가자들로부터 꽃다발을 받기도 하고, 뜨겁게 포옹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해 감동을 줬어요. 

 

멕시코뿐 아니라 중남미 전역이 여성들도 마음 놓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