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여성들의 상의 탈의 시위, 왜?

아르헨티나에서 여성 수천 명의 상의를 탈의하고 시위를 벌였습니다. 

 

남반구에 위치한 아르헨티타는 이제 봄에 접어들었지만 아직은  날씨가 제법 쌀쌀한 편인데요. 추위를 무릅쓰고 여성들이 상의를 벗어던진 이유, 과연 무엇일까요?

 

아르헨티나에선 지난 주말인 12~13일 '전국 여성 만남의 날' 행사가 열렸습니다. 여성들이 모여서 여성들의 목소리를 마음껏 낸 행사였는데요. 

 

상의 탈의 시위가 벌어진 건 13일이었습니다. 

 

여성들은 상의를 벗고 피켓을 든 채 시위를 벌였습니다. 직업이나 나이를 가리지 않고 원하는 여성은 누구나 참여한 시위였습니다. 

 

여성들은 아르헨티나 주요 도시 곳곳에 모여 시위를 벌였어요. 상의 탈의 시위가 열린 곳은 그 유명한 루한 성당 앞이었습니다. 

 

아르헨티나를 여행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루한 성당은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유명하고 웅장한 성당이죠.  세계적으로도 가장 큰 성당 중 하나로 꼽히는 성당이랍니다. 바로 이곳이죠. 

 

 

성당으로 몰려간 여성들은 상의를 벗고는 피켓을 들었습니다. 피켓엔 "교회(가톨릭)는 국가에서 꺼져라"라고 적혀 있었어요. 

 

 

아르헨티나 여성들은 왜 이런 거친 표현으로 가톨릭에 강한 반감을 보였을까요? 

 

이날 시위 참가자들은 진보적 성향의 여성들이었습니다. 가톨릭은 아르헨티나의 대표적인 보수 단체죠. 그렇다 보니 사회적 이슈를 놓고 진보진영과 가톨릭은 사사건건 충돌하고 있습니다. 

 

최근 아르헨티나에선 낙태가 이슈입니다. 아르헨티나는 원칙적으로 낙태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낙태를 했다가는 형사처벌을 받죠.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성폭행 피해자 등은 낙태를 할 수 있지만 이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피해자가 법원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이 까다롭거든요. 승인이 나오지 않아 10대 초반의 어린이들이 아이를 낳는 경우도 종종 있죠. 

 

진보적 여성들은 전면적인 낙태 허용을, 보수 진영은 현행  금지규정 유지를 주장하고 있는데요. 가톨릭은  낙태 금지 유지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초록색은 낙태허용을 상징하는 색깔입니다. 위 사진의 여성들이 초록색으로 머리칼을 염색한 건 낙태를 허용하는 의미죠. 위의 다른 시위 사진들에도 초록색이 많이 등장하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랍니다. 

 

하지만 가톨릭에 대한 진보적 여성들의  불만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보수와 진보가 충돌하는 현안이 그간 많았기 때문이죠. 

 

아르헨티나는 1900년대 초 일찌감치 여성들의 투표권을 인정했습니다. 이 점에선 민주주의의 선구자 국가인 셈이죠. 그런데 가톨릭은 당시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주자는 데 반대했습니다. 보수의 목소리를 대변한 것이죠. 

 

아르헨티나는 1980년대 후반까지 이혼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이것도 가톨릭의 영향력 때문이었다죠. 

 

아르헨티나의 하원의원 레오나르도 그로소의 결혼식 사진입니다. 그는 지난 3월 자신의 남자친구(?)과 결혼식을 올렸어요. 동성부부인 거죠. 

 

아르헨티나는 2010년 아메리카 대륙의 국가로는 최초로 동성결혼을 허용했습니다. 그대 가장 강력하게 반대의 목소리를 낸 것도 가톨릭이었습니다. 당시에도 가톨릭은 진보진영과도 또 충돌했죠. 

 

 이날 시위에 참가한 밀라그로스(23)는 아르헨티나 지방 산타페에 살고 있습니다. 그는 고속버스를 타고 밤새 달려 수도권으로 올라와 시위에 참여했는데요. 

 

밀라그로스는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까지 모두 가톨릭 재단의 학교에 다녔다는군요. 그는 "12년 동안 가톨릭의 억압을 직접 체험했다"면서 "이제 가톨릭은 보수의 대변자 역할을 중단하라"고 주장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사실상의 가톨릭 국가입니다. 정부는 매년 종교예산 명목으로 가톨릭에 막대한 재정을 지원하고 있죠. 이날 시위에선 정교 분리의 목소리가 특히 높았는데요. 이날 시위에 참가한 여성들은 "우리가 낸 세금을 왜 가톨릭에 주냐"고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보수적 가톨릭에 대한 진보 진영 측의 불만이 갈수록 커지는 것 같습니다.